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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어쩌다 보니, 30년 “일식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홀로 여의도 벚꽃 축제 현장을 거닐다가 혼술이 하고 싶었다. 외로워서였을 수도, 심난해서였을 수도, 방황해서였을 수도 있다. 무엇이 나를 혼술로 이끌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혼술이 하고 싶었다. 집 근처 거리에서 일식집에 들어갔다. 사실은 한식을 먹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일식집 특유의 내부 구조(요리사와 식객이 마주보는)가 끌려서 발을 들였다. 나는 말동무가 필요했던 걸까? 맛있다는 말로 물꼬를 텄다. 요리사는 감사해 했다. 뒤이어 나는 요리사에게 물었다. “어쩌다 일식을 하게 됐나요?”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30년 경력이라고 밝힌 요리사는 일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어쩌다 보니”라고 답했다. 우리는 이유를 다는 것에 익숙했다. 고등학교 선생님께 문제를 어떻게 ..
[모래 사나이]괴기, 광기어린 소설에서 재미와 의미를 한 번에! E. T. A. 호프만(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의 글은 가독성이 떨어지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렇다고 비교적 번역이 쉬운 책을 고르자니 원문의 의미가 왜곡된 것은 아닐까 싶어 망설였다. 더욱이 나는 번역서를 읽을 때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라 작품을 읽기 앞서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문학과지성사의 『모래 사나이』는 쑥쑥 읽혔다. 필자는 민음사, 문학동네, 창비의 세계문학전집을 모두 읽어 보았는데, 비교적 젊은 독자들이 선호한다는 문학동네 번역에 비교해도 세련된 번역이었다. 각주에는 배경이된 설화나 언급된 인물에 대한 정보가 달려 있었다. 독일에서 수학한 역자의 시대와 작가와 작품을 아우르는 해석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도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생각하는 여자, 줄리엔 반 룬]여자하는 생각 당신이 관심이 있든 없든, 귀동냥으로라도 한 번쯤 철학자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당신이 들은 철학자의 이름이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가지 확신할 수 있다. 그 철학자는 분명 남자일 것이다. 세계사에서 철학자라는 직함을 지닌 여성은 대중적이지 않다. 일부 여성 위인을 지금의 기준으로 철학자라는 범주에 넣기도 하지만,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철학자는 커녕 사상가로도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몇몇을 묶어 위대한 철학자라고 소개하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위대한 철학자에서 위대한 남성 철학자로. ​ 이제는 여성의 생각을 만나보자. 『생각하는 여자』는 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이, 우정에 대한 저명한 여성들의 '생각'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다. 틈틈이 그들과 저자의 ..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이매뉴얼 월러스틴]자본주의와 아프리카 자본주의와 아프리카 어린 시절 나에게 아프리카는 초콜릿의 원산지였다. 친구끼리 놀릴 때 비유하는 ‘아프리카 띠까띠까 씨껌둥이’의 나라였다(어릴 때는 아프리카를 나라라고 인식했다). 스핑크스가 퀴즈를 내고 미라가 관에서 나오는 판타지의 세계였다. 조금 자랐을 때는 카카오의 원산지가 되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을 보태 어린 아이들이 축구공을 만들면서 돈도 제대로 못 받는 나라라는 것도 알았다. 2010년에 이르러서는 남아공 월드컵을 개최하는 대륙으로 인식했다. 아프리카에도 잘사는 나라가 있구나, 신기해 했다. 국가의 경제를 따져보기 시작할 즈음에는 아프리카를 기회의 땅으로 보았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으니 개발이 되면 우리나라처럼 성장하겠구나, 주식을 사 두어야 하나?’ 지금도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은 ..
[모월모일, 박연준]여기 일상 있어요 여기 일상 있어요 출판시장은 대에세이 시대다. 교보문고 선정 2018년 베스트셀러10에는 에세이만 여섯 권이 올랐으며 1, 2, 3위를 에세이가 석권했다. 2019년도 에세이의 해였다. 2018년만큼의 성적은 아니었지만 베스트셀러 1, 2, 3위는 모두 에세이가 차지했다. 베스트셀러 10위 권 안에 있는 에세이들의 제목은 대부분 문장형이거나 특정 분야를 암시하는 단어가 사용됐다. “여기 시시콜콜한 일상을 담은 책이 있어요~”하고 소개하는 제목은 없었다. 그런 트렌드를 무시하는 이단아가 에세이 시장에 툭, 튀어나왔다. 바로 박연준 작가의 산문집 『모월모일』이다. 나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뒤집어보고 두드려보고 비꼬는 걸 즐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에 골몰한다. 『모월모일』을 처음 ..
그린뉴딜의 과거와 현재 - 녹색 케인즈주의와 기후정의운동 그린뉴딜 담론의 과거와 현재 대규모 산업 프로젝트로서의 그린뉴딜은 2007년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의 칼럼에 처음 등장하였다. 이때는 원론적인 입장을 서술하는데 그쳤다. 이듬해 케인즈주의 경제학자 로버트 폴린(Robert Pollin)의 연구팀이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보고서 ⌜녹색 회복⌟을 발표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그린뉴딜이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함과 동시에 2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는 다시 경제 전반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008년~2009년의 그린뉴딜 안들은 ‘탄소환원주의(carbon reductionism)’의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탄소환원주의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경제질서 내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비용-효과적(cost-effe..
[내게는 홍시뿐이야, 김설원]어떤 아이가 당신을 닮아가고 있을 지도 내게는 홍시뿐이야 서평 누구에게나 특별한 음식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 내가 유치원생일 때 있었던 일이다. 웅변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다. 그날 나는 웅변대회를 지켜본 엄마와 함께 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국물이 있는 태백식 닭갈비였다. 치킨과는 다른 맛이었다.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게 어린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특히, 자글자글한 국물에 볶아먹는 밥은 인스턴트를 좋아했던 나의 기호를 바꾸어 놓았다. 그 뒤로 나는 특별한 날마다 닭갈비 외식을 하자고 졸랐다.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에 혼자 살았다. 서울에서는 태백식 닭갈비가 흔치 않았다. 이제는 소중한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을 때, 고향인 성남에 내려가 나의 어린시절 외식을 책임졌던 닭갈비 집을 찾는다. 앞서 언급한 닭갈비에 관한 내용은 『내게는 홍시뿐..
[서울의 바깥]만성 서울 강박증 서울의 바깥을 고른 이유 제목을 보고 문득 한가지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내게 서울은 어떤 의미일까. 등본의 주소지 첫머리에 위치한 시도 이름, 취업이라는 생계 수단을 손에 넣기 위해 자리잡은 둥지,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담긴 모교 소재지 등 서울이라는 단어에 붙일 수 있는 의미는 끝이 없었다. 그렇게 의미를 담아보다가 개인의 영역을 벗어났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서울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그런 의문이 나를 소설 속 세계로 이끌었다. 일반을 극단적으로 비추는 거울 이야기는 ‘나’가 부자들이 사는 서울 소재 T팰리스에 들어서며 시작한다. 외부인 통제 절차를 거쳐 과외 수업이 있는 집에 도착한다. 학생의 엄마는 학생과 ‘나’를 분단위로 통제한다. 엄마와 학생의 목표는 수능 고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