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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묘비/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모래 사나이]괴기, 광기어린 소설에서 재미와 의미를 한 번에!

<독자여! 쉬운 번역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판형이 장점인 문지 스펙트럼에서 모래 사나이를 만나라!>

호프만 초상화

 E. T. A. 호프만(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의 글은 가독성이 떨어지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렇다고 비교적 번역이 쉬운 책을 고르자니 원문의 의미가 왜곡된 것은 아닐까 싶어 망설였다. 더욱이 나는 번역서를 읽을 때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라 작품을 읽기 앞서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문학과지성사의 모래 사나이는 쑥쑥 읽혔다. 필자는 민음사, 문학동네, 창비의 세계문학전집을 모두 읽어 보았는데, 비교적 젊은 독자들이 선호한다는 문학동네 번역에 비교해도 세련된 번역이었다.

작품에서 언급하는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각주

각주에는 배경이된 설화나 언급된 인물에 대한 정보가 달려 있었다. 독일에서 수학한 역자의 시대와 작가와 작품을 아우르는 해석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도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자의 번역자체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문체를 설정했는지 설명했더라면 독자가 작가와 작품을 좀 더 폭넒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재미, 의미 패키지>

코펠리우스의 존재를 알게된 순간, 나는 소설 속으로 빠져들었다.

 문지스펙트럼의 모래 사나이에는 호프만의 단편 모래 사나이, 적막한 집, 장자 상속이 수록되어 있다. 낭만주의다, 고딕이다 하는 분류 보다도 나는 괴기혹은 광기로 호프만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세 작품 모두 주인공의 기괴한 경험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데, 그 경험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다.

장르문학이나 상업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작품을 즐겨도 좋다. 어느 순간 작품 전반에 깔린 묘한 분위기와 인물들의 기이한 행동에 몰입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눈알이 빠져 두 개의 시커먼 구멍이 자리한 얼굴과 눈알을 수집하는 사나이, 낭만과 계몽을 오가는 주인공의 의미를 찾아봐도 좋다. 거울에 비치는 아리따운 여자는 무엇을 상징하며 등장인문들의 모호한 관계를 따져봐도 좋다. 호프만이 스스로를 녹여낸 작품에서 작가의 생각을 엿봐도 좋다. 재미로 읽든, 의미를 짚어보든 호프만의 작품들은 당신에게 기묘한 기분을 선사할 것이다.

 

<문학과지성사의 변화>

젊은 감각으로 바뀐 문지 스펙트럼 신판 『 모래 사나이 』

 문학과지성사는 다른 출판사들에 비해 젊은 감각이 떨어져 보였다. 나는 대게의 사람들에 비하면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문학과지성사의 책은 모래 사나이가 처음이다. 이 책을 읽기 앞서 문학과지성사의 이미지는 다소 고리타분했다. 누군가가 트렌드에 뒤처진 행동을 할 때 옛날 사람이라고 말하는 느낌으로, 문학과지성사는 나에게 옛날 출판사였다. 문지 스펙트럼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문지 스펙트럼이 새단장을 하면서 바뀐 표지는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 라인보다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오히려 작가의 사진이나 명화를 활용한 표지 디자인이 고리타분하게 보이기도 한다. 문고본이라는 판형 역시 신선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들과 다르게 문고본 규모가 작다. 그래서 오히려 문고본이 눈에 들어온다. 문학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문학과지성사가 새로운 출판시장에 어떻게 발돋음할지 무척 궁금하다. 젊은 독자의 틈에 녹아들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