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홀로 여의도 벚꽃 축제 현장을 거닐다가 혼술이 하고 싶었다. 외로워서였을 수도, 심난해서였을 수도, 방황해서였을 수도 있다. 무엇이 나를 혼술로 이끌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혼술이 하고 싶었다.
집 근처 거리에서 일식집에 들어갔다. 사실은 한식을 먹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일식집 특유의 내부 구조(요리사와 식객이 마주보는)가 끌려서 발을 들였다. 나는 말동무가 필요했던 걸까?
맛있다는 말로 물꼬를 텄다. 요리사는 감사해 했다. 뒤이어 나는 요리사에게 물었다. “어쩌다 일식을 하게 됐나요?”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30년 경력이라고 밝힌 요리사는 일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어쩌다 보니”라고 답했다.
우리는 이유를 다는 것에 익숙했다. 고등학교 선생님께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할 때, 대학 교수에게 과제를 발표할 때, 이력서를 넣은 회사의 면접에서 면접관의 질문에 답변할 때, 고객사에게 제안서를 발표할 때 등, 매 순간 우리는 이유를 마련해야 했다. “어쩌다 보니”라는 말은 그 이유로 매우 부적절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삶에서 운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사자성어다. 취업이 힘들다고, N포세대라고 하던데,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운칠’에 해당되는 요소에 무게를 두고 포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운칠’에 속하는 일들일 텐데.
아마 당신이 처한 지금의 시련은 “어쩌다 보니”라는 말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개인이 통제 불가능한 요인에 의해 처하게 된 상황일 수도 있다. 그렇게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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