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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묘비/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행복했던 한자 수업 시간, 김미혜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방문객 中, 정현종

 

   의무교육에 몸을 싣고 이루어지는 선생님과의 인연은 대부분 자의가 결여된 만남이다. 자의가 연한 사건일 수록 우연의 농도는 진하다. 우연은 쉽게 마음을 건드린다. 그래서 그 시기에 만난 선생님과의 추억은 좀 더 애틋하다.

 

   나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업시간에 엎드려 잠만 자는 학생은 아니었다. 수업시간 끝나면 교과서와 노트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선생님이 수업이 아닌 이야기를 할 때면 누구보다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귀기울여 들었다. 학창시절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수업 내용은 선생님이 들려주는 경험담, 제자들의 흥미를 위해 준비해온 이야기, 그리고 온전한 선생님만의 생각이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풀어 놓은 적이 거의 없었다. 꺼낸다고 하더라도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너는 왜 그러냐."로 마무리 짓는 꼰대 말투의 모범사례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선생님께서 감정을 내비치며 재밌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내용을 떠나 그런 상황 자체가 어린 나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곤 했다.

 

 

   

- 영화 ! 영화 !

행복했던 한자 수업 시간 中, 김미혜

 

   하지만 대게 아이들은 위 시에서처럼 선생님의 이야기보단 영화, 만화, 자습 등 선생님과 무관한 것을 좋아했다. 그때마다 나는 화자가 "심리테스트!"를 외쳤던 것처럼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어느 명문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체육선생님으로 배정하자 학부모들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체육학과 졸업이라는 말을 듣고 수그러 들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스승과 제자'라는 말이 가지는 따뜻함은 분명 어느 명문고등학교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성적으로 줄세워진 아이들이 질서 없이 뒤섞여 앉은 교실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때 '스승과 제자'라는 말의 온기가 피어오른다.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 우연으로 만나 스승과 제자로 거듭나는 교실에서는 물론, 자의로 쌓아가는 인연이 많은 교실 밖에서도 많아졌으면 한다. 행복했던 수업 시간에서 나아가 행복한 세상 살이가 되기를 희망한다. "심리테스트!" 라고 외쳤을 때, "집에 가서 심리테스트나 해"라는 면박은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