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잃어버린 지 며칠 째일까
나무 세 그루
엄마를 잃어버린 지 며칠 째일까. ‘엄마를 부탁해’는 내게 그런 의문을 남겼다. ‘엄마’를 홀대한 죄책감과 후회는 등장인물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파란 슬리퍼를 신은 채 도심 곳곳을 초라한 차림으로 떠도는 ‘엄마’의 모습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지난 일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정확히 어느 시점을 콕 찍어 엄마에 대한 태도 변화를 앞뒤로 나누기는 어려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을 해준 존재를 가장 홀대하고 있었다. 안부를 묻는 엄마의 전화만큼 귀찮은 것이 없었고, 나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속 좁고 답답한 어른이라고 여겼다. 나의 사소한 일 하나라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주책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른다고 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흔한 충고인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몇 번이고 가까운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자며 다짐했을 텐데, 지난날의 어린 나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엄마에게 너무나 몰인정한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꼬장꼬장한 얼굴로 동네 곳곳을 누비던 시절에는 세상 무엇보다 엄마가 좋았다. 몸이 다치거나 친구들과 다투거나, 선생님께 혼나거나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 언제나 엄마를 찾았다. 다들 그런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을 원인으로 울게 되었든 “엄마”하며 울었던 기억 말이다.
교복을 입을 즈음부터 ‘엄마’와의 거리는 성큼성큼 멀어졌다. 아니, 더 일찍이 엄마의 품에서 빠져나가려 애를 썼던 것 같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 어른스러움이 친구들 사이에서 갖춰야할 하나의 유행이 됐을 때부터 “엄마”를 입 밖으로 내는 일은 없었다. 엄마는 사춘기에 접어든 나와 갈등을 겪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꼬박꼬박 새벽기도를 올리고 이따금씩 속도에 맞춰 따라가려 애를 썼다. 회사 때문에 건대입구 쪽 고시원에 방을 잡아 살적에는 성남에서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지하철을 타고 5층 꼭대기에 위치한 고시원 방까지 계단을 올랐던 엄마. 밥이나 국이 식을까 겹겹이 싸매고 와서는 도시락을 풀어 놓던 모습. 고기반찬은 손도 대지 않고 맨밥만 조금 뜨는 척 하며 내가 수저를 놓을 때까지 “이것도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 지켜보며 말동무를 해주었던 엄마. 그렇게 사랑 받고 있을 때에도 나는 엄마의 헌신을 왜 보지 못하고 짜증만 부렸을까.
그래서였던 것 같다. 가족들 앞에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신교대에 입소하던 날, 함께했던 사람들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된 때에 가장 그리운 존재는 ‘엄마’였다. 다양한 책들로 빽빽하게 메워진 막사의 책장에서 망설임 없이 나도 모르게 훈련소 곳곳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배식 받은 국에서 짠맛이 조금 강했던 엄마의 손맛이, 세탁비누로 빨래를 할 때면 매일 뽀송뽀송한 옷가지들이 가지런하게정리 되어 있던 옷장이, 나팔소리와 함께 잠에 들 때면 아들 잘 자, 좋은 꿈 꿔, 그런 목소리…. 훈련소로 보낸 서툴게 쓴 손편지와 무교인 나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인터넷 편지로 성경구절을 보낸 엄마. 기억 속에 가지고 있었던 엄마의 흔적들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붕 떠올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더했다.
‘너’는 결국 살아 있는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볼 수 있기는 하나 조금 제한적인 상황에 놓인 내 처지 역시 물리적으로 보면 엄마를 잃어버린 것과 비슷한 모양새지만 사실 나에게 입대는 엄마를 찾는 계기가 됐다. 함께할 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엄마의 헌신이 내가 짜증으로 반응할 만큼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으면서도 엄마를 홀대했던 그때, 그때야말로 나는 엄마를 바로 옆에 두고 잃어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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